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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저자(글)

세상에, 홍익인간이라니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현재 통용되는교육 기본법에도 당당하게 나와있다. 

고전한문에서 인간이란 표현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을 뜻한다.사람을 나타낼때는 사람인자를 쓰고 세상을 나타낼 때는 인간이란 단어를 썼다.

한나라의 건국신화 건국이념을 이야기하는데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다'라는 말은 무슨 이념이 되기에는 밋밋하고 싱겁다.

홍익인간은 조선시대 내내 관심을 받지 못하다 현대에 와서 새롭게 발명된 전통이다. '절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말 자체에도 한국을 지칭하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대상은 세상이고, 과대망상으로 민족주의는 커녕 모스모폴리탄(세계시민주의)적으로 ㄷㄹ린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에는 민족의 시선도 아니고 시민의 시선도 아닌, 영웅적인 외부자의 시선이 담겨있다.

단군신화 곳곳에서 중국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욕망이 느껴진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는 '위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로 시작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단군신화는 중국 황제마저 인정하지않을 수 없는 최상의 권위 하늘을 끌어들인다. '하늘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세상을 욕망하고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윝백지역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만 하였다.' 즉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라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하늘신의 목소리다. 단군신화는 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다.

호랑이해가 밝았다. 호랑이는새해 결심 같은 것은 하지않는다.

일단 현 상태에 불만이 있어야 새해 결심을 할 수 있다.

자기재창조의 기적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그저 호르몬의 노예이거나 경제적 여건에 의해 전적을 좌우되는 단세포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곰은 성공하고 왜 호랑이는 실패했을까. 우리는 단군신화가 호랑이가 아닌 곰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단군신화의 인간관은 웅녀에게 응축되어있다.

3세기 때만해도 한반도에는 적어도 78개의 소국이 존재했고 아무리 일찍 잡아도 삼국시대라는 현실은 4세기 부터나 시작된다. 

우리는 복잡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라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한 역사학 논문보고에 따르면 홀수가 좋다는 단순한 이유때문에 사국시대는 안되고 (가야) 삼국시대 혹은 오국시대가 합당하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그뿐이랴 사국시대는 죽은 사자가 발음상 연상되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정치권력은 대게 무력으로 경쟁자를 진압하여 성립하는데 빨리 싸움을 끝내고, 피를 씻고, 정당화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잠옷을 입고 낮잠을 즐기기엔 너무나 피곤하다. 그때 곧잘 동원되는것이 종교다. 단순히 무력으로 집권한것이 아니라 신의 가호에 힘입어권력을 쟁취했다고, 신의 뜻이니 귀찮게 만들지 말고 알아서 기어달라고.

 

신라 눌지왕의 동생를 구출하기 위해 왕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 모진 고문끝에 죽은 충성스러운 신하 박제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름부터 다른다. 김제상(삼국유사), 박제상(삼국사기). 박제상의 부인은 집에도 안들르고 왜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바닷가로 쫒아와선 따라잡지 못해 널브러져 오랫동안 울부짖었다. 왜 국가는 멀쩡한 가정을 이처럼 파괴한단 말인가. 말이 나랏일이지 눌지왕이 자기 동생을 보고싶어 생긴 사단이 아닌가. 자기 가족의 그리움을 알면 남의 가족의 그리움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국가는 박제상의 아내에게 보상한다. 아내에게 국대부인의 명예를 준다. 국왕은 동생을 찾은 기쁨을 음악(향악 우식곡)으로 표현했다.  아내는 치술령 위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 죽어버린다. 설화에 따르면 그녀는 망부석으로 변했고 망부석은 박제상 아내의 대단한 절개를 나타내느는 것으로 해석되곤한다. 그 망부석이 절개를 나타낸다면 그돌은 오늘날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바르게 살자' 돌덩이와 다를게 없다. 사회적 의도가 담긴 돌덩이다. 과연 절개를 나타내는 것일까.

1671년에 남구만의 '청주상당산성 기우제문'에는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서 먹는 일이 있었다고 했는제 지금은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경우가 있으니 인간의 도리가 다 없어질 거십니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은 해가 저물면 부지런히 떼 지어 이동하며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 같은 존재가 보이면 족족 다 물어뜯어 동네 전체를 좀비 마을로 하양평준화 시킨다.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한다. 측은지심

애도역시 기억의 행위다.

1910년에 시행된 조선토지조사사업에 따르면 조사된 2300만 헥타르중 1813만 헥타르가 산지였다. 정조의 말을 통해 조선후기의 국가 공원력이 산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성부를 뺀 지역의 사찰수는 1524개 정도, 정조의 말을 통해 그 많은 사찰들은 다 나름대로 국가에 필요한 존재들이었기에 남아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억불을 외쳐도 현실적으로필요가 있으면 국가와 종교는 공조한다는 사실을 새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성인이란 거래 은행에서 공인인증서를 갱신하고 스마트폰에 복사하면서 정부를 저주하지 않는 인격자정도다. 

안동의 유교렌드의 시작은 도덕이 땅에 떨어진 난세를 개탄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한적이있다. 유교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한국전체가 유교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동에 있는 것이 아닐까. 

노비가 조선시대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면 왜 한국에서 노비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까. 거꾸로 집집마다 자기 집안이 양반집안이었음을 표방하는 족보가 존재한다. 한국의 족보의 흥미로운 점은 큰바위 얼굴 중심으로 가계가 조직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출세한 사람을 골라 자신이 그의 몇대손임을 내새우는 것이다.

현존 족보의 대부분 상당수는 위조된 족보이다.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19, 20세기에 벌어진 일.

노비를 집단적으로 세탁함을 통해 현대 한국인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시대는 의도적으로 망각하고자 하는 대상, 무지의 상태로 남아있으려는 대상, 그리고 무지의 상태로 남아있으려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해방이 선물로 주어진것임을 솔직히 시인하고 고맙게 여겨야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서 계획된 독립을 쟁취한것이 아니다. 

이겨서 전리품을 끊임없이 나누어주지않으면 부하들은이탈할것이고 전리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잔인한 침탈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세금이야말로 확실한착취방법

식색의 욕망을 약하게 하는 방법은 과하게 먹거나 과하게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 하고나면 욕망은 사그라진다.

 거사가 실패하면 12.12는 반역이 되고 성공하면 혁명이 된다. 그러나 적절한 용어는 쿠데타다. 성패와 관계없이.

고도로 발전한 쿠데타는 자신이 아름답기에 자신을 무조건받아들이라는 성질사나운 미남미녀와도 같다.  

심미적으로 열악한 쿠데타는 별수없이 도덕적 서사에 의존하게 된다.

어느시기에든 골몰하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진척시켜보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된다. 

가해자는 무력한 피해자를 고름고 같은 진물의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고 싶어한다. 인권, 존엄이 아닌 격국 너희는 쓰레기였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고문하는 사람은 누군가 존엄을 지키는 모습을 참지 못한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굶주린 짐승같은 몸뚱아리가 너희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증명하겠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같은 인간의 탈을 썻기에 인간은 선도 악도 아닌 모순을 품은 질문이 됩니다.

당신은 팔자좋은 환경에서 자랐나 보군요 사랑을 믿다니. 이 세상엔 사랑은 없고 충동만 있어요.

2016년 촛불시위는 과연 혁명이었으며 정말 혁명이었다면 촛불혁명이 약속한 세상은 도래했을까?

혁명은 일어났으나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않았을때 사람들은 혁명은아직 끝나지 ㅇ낳았다고 외치지만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그렇게 외칠뿐이다.

장기간 쌓여 마침내 찾아오는 정치적 건강을 기다릴 여유는 한국 정치에 없다.  한국의 정치동학은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닮았다.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은 비판적 시민사회를 억압하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 한국 시민사회의 산파에 가까워 군사정권 하에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정부통제 밖에서 유통될 수 있는 경재적 재원을 만들어내 그 재원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의 부르주아와 농민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수있었고 그 학교에서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 안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자라났다.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민주화시대가 왔다는 것은 과연 한국 시민사회에 축복이었을까.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던 절대악으로서의 타자가 사라지자 시민사회는 텅 빈 벌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숙고해야만 했다.

모든 식재료도 보약이 되기를 꿈꾸듯  21세기 초 한국,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정치가가 되기를 꿈꾸는가. 모든것이 보약이 된 나머지 마침내 보약이 사라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항의를 받은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자기 잘못을 금방 알아차릴만한 사람은 일을 잘 벌이지 않는다. 잘못을 느끼더라도 이제껏 이런식으로 진행되어왔다고 자기변명을 일삼겠지. 이것이 관례였다고. 다른사람들은 군말없이 수용했고 까다로운 인간을 만나 불필요한 고생을 했다고 속으로 생각할것이다.

어이없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을때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그랬을 공산이 크다.

이익의 큰 부분을 선취하고 비용의 큰 부분을 타인에게 전가했던게 아닐까.

이익을 고루 나누기 싫으면 그런 욕망을 품은 사람들끼리 일을 벌이면 되지않을까. 그렇지만 그들은 소수기에 성대한 행사나 근대화를 해낼 수 없겠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

정신적 허허벌판이 된 선진국에 한국인이 서있다.

꽃들이 자지러지듯 피어난 어느 봄날

군의 입학이 유독 축복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대학입학은 너희의 성취가 아니다. 우연히도 군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나 고액의 과외또는 재수도 할 수 있었고 튼튼한 육질과 맑은 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밥은 잘 먹었느냐, 잘잤느냐, 내복 입었느냐, 공부했느냐 묻는 보살핌속에 군이 놓여있진 않았을까.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울게 있느냐

돼지, 너희는 돼지다. 그들의 성취도 아니고 그들의 선택도 아니었다고 보았다. 기르는 강아지조차 군의 안색을 살피는 속에서 군은 살았고 이미 결정되어있었다. 갈데없는 돼지였다. 노예. 아비어미의 노예.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자유, 혼자있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할 불안과 공포를 대가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 권리.

너나 할것없이 대학의 개혁을 외쳤지만 값하는 개혁은 이루어지징낳고 대학이 길을 잃은줄 몰랐거나 알아도 대충 알았거나 진심으로 개탄하지 않거나 개탄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눈치를 보았거나.

모든 활동에는 경제적 기초가 있어야하고 취직과 돈벌이에 유념하는것은 비판할 수 없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플랭크를 하면 시간은 실연한 거북이보다도 더 늦게 간다.

사람은 거울을 보며 자문할때 성인이 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남을 호도하는 것이 거짓말쟁이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자, 혹은 사이비 종교인은 자기 자신도 속여야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자기가 먼서 속아야 자신감을 가지고 남들을 속일 수 있다. 

아무리 도덕적 천재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사회라는 보다 큰 영역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 운동이 유지되기 위해서 많은 것이 추가로 필요하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는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그러한 매력이 재원과 결함하자 재단이나 학교같은 조직으로 열매 맺었다.

평상시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는것처럼, 평상시 한국인들은 한국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달라 그저 인간이기를 그치고 새삼 한국인이 된다. 

전형성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그 기대를 창조적으로 배반해야한다.

한국의 현실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케이팝의 나라 같은 상투어로 요약될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으니까.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 인류 문명이 아니라 미국 문명을 상징한다.

인간은 뭔가 희망하는 동물이라 지금 당장의 현실보다 더 나은것을 상상하고 소원하는 동물이다.

벽에 큰 글씨로 적었다는 것은 평소에 하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충동적인 농담이 아니라 숙고된 농담이 가능성이 있다.

서비스 제공자는 대중의 욕망과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해서 제공했다.

왜 나를 낳았냐는 자식을 인생이라는 서비스에 가입시킨 부모도 딱히 할말이 없다. 딱히 그들의 책임도 아니다. 종족 번식의 욕망을 주입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조물주가 아니겠는가.

욕망, 기회, 능력이 모두 있을때 연애와 결혼이라는 행위가 성립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이라는 말은 그 삼요소가 충분히 갖추어 지지않았다는 뜻이다.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국가가 나서서 프러포즈 장소를 건설해준다고 프러포즈가 늘어날것인가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에 다닐 필요를 못느끼겠군요 는 탈퇴고 에잇 까짓것 한번 해주고 말지는 감내다.

내가 돈이 많다면 강제나 계몽보다는 합리성을 재정의하는데 쓰겠다. 삶의 조건을 조정하는데 쓰겠다. 

선택지 자체에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진부하면 태연하게 설문지를 휴지통으로 보내버린다.

2022년 대한고혈압하회는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 목표혈압을 140미만에서 130 미만으로 낮췄다. 기존에 고혈압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느닷없이 고혈압환자가 되어버렸다.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조치의 저변에는 현실적인 이해관계, 환자들이 새로이 병원에 다니고 고혈압약을 제조해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보험회사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당신이 가족을 사랑한다니 참 다행이다.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봤을때 가족이란 얼마나 가변적인 존재였는가.

주관적이라니, 그러면 미남에 대한 객관적 지표같은 것이 있단 말인가 해봤자 당대의상징적인 지표같은거겠지.

성숙 역시 구성된 것이다.

세상이 주는 삶을 그대로 받아먹어야하나. 나는 이 세상에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단골이 아닌데 이 세상이 내 구미를 알리가없는데 자꾸 세상이 나보고 주는대로 먹으라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자신의 수치심까지 담아 남들보다 더 크게 우는 사람이 있고 대낮의 성당에 가면 어두운 구석에서 남들보다 더 깊이 흐느끼고 있는 사람이있다.

어쨌거나 아이를 낳고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라고 정부가 채근하고 있기에

최상위권 자살률을 가진 사회에서 매일매일 살아 있는게 기적이니까.

정신줄을 놓지않으려면 정신이 필요하지 않겠나.

흥분해서는 안되고 그들의 예상대로 움직여서는 안되고 계획을 잘 세워야한다.

제대로 눕는 자세는 힘을 뺼대로빼서 온몸을 내팽겨쳐버리는 상태가 아니다.

심장이 뛰고있는것이 사는것인가 뇌가 작동하면 사는것인가.

비굴해질때 죽는다. 신조를 꺾을때, 정체성을 배반할때, 인간 이하의 짓을 저지를때 죽는다. 영혼은 시시각각 죽는다.

죽더라도 영혼을 살리겠다니 그 무슨 사치스러운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