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인간형은 사실 어느 조직에서나 사랑받기 힘들다. 사랑받지 못하는 건 별 상관없지만(대체로 사랑받으면 기대에도 보답해야 하므로 귀찮은 일도 생긴다), 그렇다고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매사에 일일이 투쟁할 열의까지는 없기에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좋게 말하면 냉소주의였고, 정확하게 말하면 비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세계지도를 놓고 정말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열몇 곳을 빼고는 살기 좋다 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인류의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불행하다는 속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염세주의 철학자는 “수요일에 태어났다고 예외일 수는 없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입시경쟁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전리품을 과시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인 것이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예전 국민학교 졸업식에서는 전교 일등만 몇 번씩 단상에 올라가 온갖 상을 독식했지만,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책읽기상, 친구돕기상, 달리기상, 오만 이름의 상장을 모두에게 인심 좋게 나눠준다. 어느 쪽이 더 다수가 행복한 졸업식일까.
답한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너도 나도 조금이라도 일 분당 본 글자수를 늘리려고 경쟁하는 학원 분위기에 짜증나기 시작한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미친듯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난 다 귀찮고 혼자 방에서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고 싶을 뿐인데, 왜 어른들은 내게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간섭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가끔 세상이 다 속독법학원 같을 때가 있다.
공부 하나 달랑 잘해서 먹고살고 있는 불균형한 인성의 나는 그 우아하고 세련된 분들 사이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서민계층 자제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공부 하나밖에 없다. 도서관 덕분에 돈 안 드는 독서가 가장 큰 취미요 특기일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좋은 의도로 최악의 결과만 낳을 수 있다.
역사의 필연이 어떻고 민족이 어떻고 계급이 어떻고 하는데 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가장 중요한 인간이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種이 틀렸다.”
젊은이의 마음은 심히 비장했으나 몸은 비루했다.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결국 변한 건 세대라기보다 시대다.
인건비라는 숫자로만 존재하는 사람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를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돼요.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슬럼가 흑인이 더럽고 불쾌한 것은 사실 아니냐’고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사냥한 역사와 빈부격차, 불평등이라는 맥락에 대한 무지다.
몇 줄짜리 형식적인 기각결정문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마는 것이 법 규정대로의 처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국가가 갖출 예의 말이다.
몇 줄짜리 형식적인 기각결정문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마는 것이 법 규정대로의 처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국가가 갖출 예의 말이다.
학벌의 벽은 왜 존재할까. 먼저 학력이 인재를 평가하는 안전한 방식이라고 여겨져서다.
국밥집조차 주인이 가게에 늘 나와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맛은 천양지차다
법정은 전쟁터다. 상대는 인간 말종 사기꾼이고 나는 순결하고 억울한 희생자다. 법정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한쪽이 “내 저놈을 칼로 찔러 죽이고 싶습니다”라고 고함을 쳤단다. 그러자 그가 한 말, “가슴속에 칼을 품고 계시니 스스로 그 칼에 찔려 다치시는 겁니다”.
당사자들이 겉으로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과 속으로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다를 때가 많다. 체면상 또는 전략적 허세(블러핑)로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 슬쩍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제3의 대안을 제시하면 못 이기는 척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리학이다.
인간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최소한 한 가지 재능은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재능 말이다.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다보면, 상상보다 훨씬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스스로 공동구매하지 않으면 강제배급받게 될 테니
말이다.
남성의 성욕이 본능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성범죄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러니까 더더욱 그로 인한 위험성을 통제하기 위한 정교하고 강력한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속마음은 내가 나쁜 짓을 해도, 구린 데가 있어도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는 공범을 원하는 거다.
당신은 조직에 이용당하는 호구에 불과하다. 이득을 분배받는 공범씩이나 되지도 못한다.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차리고 보아야 한다.
처음 미국 온 날 애들 먹일 우유 한 통 사오느라 40분을 걸었다. 차가 두 발이나 다름없는 사회다.
인간은 도덕적 설교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현재 이들이 느끼는 부당함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주어야 설득이 가능하다.
“판사님은 순수하신가봐요. 인간을 참 선하게만 보시는 것 같아요”라며
충고 섞인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땐 “그런가요?” 하며 웃을 수밖에.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순수해서가 아니라 이미 바닥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지만.
핀란드인 두 명이 코냑 열 잔 정도를 침묵 속에 비우며 백야에 지평선 따라 움직이는 태양을 구경한다. 마침내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늘 멋지군……”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 술 마시러 왔지 종일 수다 떨려고 왔나!”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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